사람들은 말한다. "이 지긋지긋한 세상 누가 어떻게 엎어버릴 순 없나?"라고. 이런 현대인들의 일상탈출에 대한 소망을 이루어주고 금기를 깨뜨리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파이트 클럽이다.
일상에 대한 탈출, 현대인의 생활에 대한 회의, 폭력의 미학, 인간의 이중성, 통제에 이끌리는 집단의 무서움 등에 대해 적나라하게 또 사실적으로(하지만 아이러닉하게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할 것처럼) 그려냈다. 현 사회를 파괴하고자 하는 한 남자의 카리스마와 그를 지켜보며 그의 카리스마에 녹아들지만 점점 심해져만 가는 그의 폭력성에 조금씩 반발을 키워가는 다른 한 남자의 심리 상태를 영상과 대화를 통해 잘 담아냈다.
인간은 누구나 일탈을 원한다. 다만 사회라는 틀 안에 묶여 있고 법이라는 굴레가 잡혀있을 뿐. 그 것을 거부하는 단체가 '파이트 클럽'이다. 또한, 인간(특히 남자의 경우)은 누구나 폭력성과 호전성을 가진다. 이를 표현하고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역시 '파이트 클럽'이다. 이 것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통쾌함을 느끼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가 현실 생활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 나타내지 못하는 것. 숨겨야만 하는 것. 들추고 싶지만 들추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깨질 수 있는 곳을 영화 속에서 제공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건 아닌데' 라는 것을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이유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큰 일탈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또한 그 안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끼게 된다. 또한,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가까워지면서 영화가 갖는 반전이라는 장치를 통해 더욱 극명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어떤 인간이라도 가질 수 있는 이중성에 대한 극적인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영화 내내 보여지는 어두운 분위기와 영상, 또한 시나리오상으로 치밀하게 짜여진 영화적 장치가 잘 어울어지고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 또한 최고조에 달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인간의 선과 악, 이 양면성의 연기를 보여주는 최고의 배우는 역시 에드워드 노튼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 누구보다 매력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가 브래드 피트라는 것 ....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모든 걸 다 잃어봐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어"
"Where is my mind? "
감독: 존 카니
배우: 글렌 한사드 / 마르케타 이글로바
장르: 드라마 / 음악
시간: 85 분
국가: 아일랜드
이 영화는 2007년 선댄스영화제, 더블린영화제에서 잇단 호평을 받으며 등장했다. 관객들은 여태까지의 뮤지컬 영화와 매우 다른 느낌을 가진 이 영화, 그리고 음악에 환호했고 영화 평론가들은 '뮤지컬 영화의 미래'라고 극찬했다.
2주 동안의 촬영기간,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이런 극찬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기존 음악 영화의 틀을 깨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흔히 뮤지컬 영화를 이야기하면 '물랑루즈', '시카고', '헤드윅'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굉장히 화려하고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원스에서는 이러한 화려하고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일체 배제되었고 화려함이나 웅장함 대신 절제와 수수함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흔한 사랑,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사랑 대신 잔잔하고 고요한 사랑을 주제로 택한 것도 원스의 차별점이다. 여자에게 배신당한 남자, 남편과 별거 중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택해 그들의 수수함 속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상처받은 사람들끼리의 사랑은 열정적으로 불타오르진 않지만 천천히, 그리고 잔잔하게 진행되어 간다. 그가 "남편을 아직 사랑해?"라고 물었을 때, 알아들을 수 없도록 체코어로 이야기한 "밀루유 떼베(난 너를 사랑해)"는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감정이 움직여간다.
또한, 그들의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잘 표현했다. 그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나 스킨십 없이 노래와 영상만으로도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아일랜드의 서민층 거리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바탕으로 흐르는 어쿠스틱 기타의 멜로디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인위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끼워 넣은 음악도 없다. 원스의 음악은 두 주인공의 마음을 대변하며 절제된 언어로 그를 표현해 관객이 귀와 심장을 통해 그 마음을 느끼게 한다. 뮤지컬 영화라는 한계점에서 영화와 음악을 이분화시켜 표현하는 영화도 많이 있었지만, 원스에서는 영화의 흐름 속에서 노래를 잘 녹여낸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잘 생긴 남자주인공도, 예쁜 여자주인공도 없다. 평범한 외모의 두 남녀와 음악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영화이다. 서로를 배려하며 절제하는 평범한 그들의 모습이 있기에 더 빛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가난한 그가 더욱 가난한 그녀에게 피아노를 선물해주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은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를 사랑해'를 체코어로 뭐라고 해?"
"밀루 예쉬 호?"
"그럼... '밀루 예셔?'"
"Miluju tebe(밀루유 떼베)"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비취 전갈의 저주, 에브리원 세즈 아이러브유, 맨하탄, 매치 포인트, 마이티 아프로디테, 라디오 데이즈.... 우리 앨런의 영화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뭐랄까... 한 번 그의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자꾸자꾸 다른 작품을 보고 싶어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2006년 개봉했던 매치 포인트를 시작으로 그의 작품들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던 도중, 이 작품을 만났다. 맨하탄.
이 영화는 79년작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영화에서 현대인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느끼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과 인간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특히, 그 중에 사랑에 대해서.
넓은 도시, 많은 인파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 소통하고 느끼고 생활한다. 그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게도 된다. 이 영화는 그런 모든 삶. 특히, 뉴욕에서의 삶을 지속적으로 그려낸다. 처음에 설정된 인간관계에서 그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 가며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다시금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부담없이 매끄럽게 이어나간다. 어찌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로 관계가 맺어지지만 그 것을 우디 앨런 영화 특유의 유머감각과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가지고 있는 부분을 공략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공감도를 높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자리를 찾아가는 주인공들을 보여주면서 보는 이에게 말한다. '사랑은 떠나야지 그 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라고.
가장 흑백 영화다운 영화. 흑백의 화면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흑백이었기 때문에 공감이 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자신이 사랑하는 도시만큼이나 거칠고 낭만적이었다. 그의 검은태 안경 뒤에는 정글의 맹수 같은 성적 에너지가 뙤리 틀고 있었다. 이거 정말 놓은데. 뉴욕은 그의 도시였다. 그리고 앞으로.."
"당신은 사람을 좀 더 신뢰해야되요."
이 영화는 우리 나라에 가장 잘 알려진 홍콩 멜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불륜'이라는 소재가 어떤 방식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따뜻해보이지만 어두운, 강렬해 보이지만 희미한 영상미는 최고라고 평가된다. 각 장면장면의 연결이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며 그런 효과를 통해 점차 상대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두 사람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리고 있다.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안될 두 사람. 흔히 '불륜'이라고 불리는 상황에서 그 둘의 사랑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이렇게 두 사람의 커져가는 사랑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두 가지 효과는 절제와 반복이다. 이 영화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가까워져가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없다. 장면을 통해, 음악을 통해, 눈빛을 통해, 표정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멜로 영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스킨쉽도 매우 절제되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 흔한(?) 키스씬도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체 왜 감독은 그런 절제된 사랑만을 관객에게 보여줄까. 답은 마지막 장면에 있다. 그들만의 비밀. 그들만의 사랑. 그들만이 알고 있는 둘 만의 이야기. 그 것을 묻으러 앙코르와트로 간 양조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2046호의 일은 관객의 상상과 생각에 맡기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반복이라는 장치를 사용했다. 주요 장면은 2번씩 보여준다. 그들은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해서, 또 그들의 맞아야되는 상황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습'을 한다. 그 2번의 연습의 과정은 같지만 결말은 다르다. 그 둘은 그 연습을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계속 던져주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연습에서는 2번째 연습에 도달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리는 장만옥의 울음소리를 어둠 속에서 들려줌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화양연화'라는 말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라는 뜻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두 주인공의 가장 아름다운 때는 아이러니컬하게 그들의 중년기에 맞은 '불륜의 시기'이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언제였냐고. 그리고 대답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육체가 아닌 정신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는 시기라고.
가장 고독한 모습으로 담배를 태울 수 있는 배우, 가장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 양조위와 세월의 흐름이 피해간, 무표정한 얼굴에서 가장 큰 슬픔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 장만옥의 조합이 인상깊었던 영화였다.
P.S : 양조위가 뒤에서 장만옥을 안고 있는 포스터는 너무 유명해서 다른 포스터를 골라보았다 ^^;
"티켓이 한 장 더 있다면 나와 같이 가겠소?"
"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건가요?"